KWC2023 결과 발표:
한국 와인 문화의 풍요로움

신승우

2023년 8월 1

이번 대회의 관전 포인트는 ‘와인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상 와인들의 나열은 마치 세계 와인 산지를 일렬로 보여주는 그림 같다. 지속적으로 성숙해 온 한국의 와인 시장이 어떤 와인 소비 문화를 만들고 있는지도 대회의 결과를 마주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코리아 와인 챌린지 2023 비디오


와인 문화의 다양성 수용

새로운 외국 음식 문화를 경험하는 영역에서 처음의 여정은 종종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에 의해 주도된다. 이러한 선구적인 브랜드에 의한 새로운 음식 문화가 제공하는 맛의 경험은 소비자들이 마음을 여는 초기 관문 역할을 하곤 한다. 이후 소비자의 미각이 점점 더 정교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를 원하게 되면, 이제 이 문화는 번창하고 다양한 시장으로 진화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에는 다양한 식음 문화가 도입되었다. 커피와 와인은 빠른 성장세와 진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또한 한국에서 커피 문화가 도입되고 성장하는 모습은 와인 소비 문화의 진화와 꽤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코리아 와인 챌린지와 스타벅스의 여정은 이러한 진화를 설명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1999년에 한국에 첫 선을 보인 스타벅스는 새로운 커피 문화의 도래를 알렸다. 이 브랜드는 라이프 스타일 개념을 도입해서 커피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소비하는 습관을 바꾸어냈다. 단순한 음료를 소비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커뮤니티 허브의 역할이 담긴 ‘커피 한잔’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23년 동안 한국 커피 문화의 폭발적 성장을 촉발시켰다. 한국 소비자들은 커피에 대한 더욱 세련된 미각을 발전시켰고, 다양성과 품질에 대한 인식은 더 뚜렸해졌다. 소비자들은 생산지와 원두의 종류, 로스팅 정도에 따른 커피 맛의 차이와 개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점원이 카페에서 주문을 받을 때도 소비자가 커피의 산미를 추구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마치 소믈리에가 고객에게 와인을 추천할 때, 산도에 대해 미리 언급해 주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

올해로 19회를 맞이한 코리아 와인 챌린지도 현재의 한국의 와인 풍경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20년에 가까운 여정을 걸어온 와인 품평 대회를 지난 과거부터 돌이켜 본다, 매년 대회 때마다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아직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생산자의 와인이 최고상을 받을 때였다. 소위 당대에 한국에서 가장 와인을 잘 아는 전문가들로 심사위원단으로 꾸려 놓았는데, 그들이 선택한 와인은 아직 한국 시장에 도입되지 않은 와인일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올해에도 주목할만한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영국이 스파클링 와인으로 트로피를 차지한 것이다. 비슷한 기후와 토양 조건으로 인해 프랑스 샴페인과 비교되는 영국의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기사를 해외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KWC2023에서 영국의 스파클링이 두각을 나타냄으로써, 고품질 스파클링 와인 생산자로서 영국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이 대회가 우리 나라 소비자들에게도 확인시켜준 셈이다.

보르도의 샤또 무똥 로칠드나 샤또 오브리옹과 같이 상징적인 브랜드의 이름을 아는 것이 와인을 접해 본 증거처럼 여겨지던 시대를 우린 이미 오래 전에 지나왔다. 그간 와인 교육도 증가했고, 다양한 한국 요리와 페어링이 시도되면서 와인은 한국 음식 문화에 이미 많이 스며들었다. 이제 우리 나라에는 와인 맛에 대한 경험치가 높은 소비자들도 많이 있다. 여러 와인 생산국의 다양한 가격대와 다양한 유형의 와인을 직접 시음해보고 자신의 선호도를 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소비자들 말이다. 이처럼 일반 소비자들도 와인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품질에 대해서도 각자 다각적인 평가를 내리는 시기에 KWC2023이 열렸다.

주목할만한 결과

출품 와인 수 25개국에서 808종
2023년 메달 획득 상위 4개국 이태리(57종), 호주(48종), 스페인(45종), 칠레(42종)
동메달 이상을 수상한 총 메달 개수는 327종으로, 전체 출품 와인의 40% 이내


KWC2023 결과 분석

올해에는 전례 없는 수준의 다채로운 참여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전년도 20개국에서 크게 늘어난 25개국로부터 출품 와인들이 접수되었다. 이러한 증가는 국제적 수준으로 한국 와인 문화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해외로부터 한국 와인 시장도 관심을 받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런 성장에 큰 기여를 한 곳은 와인의 구세계(Old World)인 유럽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생소할 수 있는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젠으로부터 와인이 15종이나 출품되었고, 헝가리에서도 15종, 체코 공화국에서는 25종을 보내왔다. 몰도바와 레바논도 대회에 참여했다. 레바논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위치하지만, 와인의 생산 전통과 빚어지는 와인 스타일로 볼 때 지중해 및 서구 세계와 더 일치한다.

대회의 메달은 구대륙 와인들에게 많이 돌아갔다. 출품 와인의 수에서도 구대륙이 더 많았고, 수상 와인도 15개의 수상 국가로 이루어진 구대륙에서 56%를 차지하면서 작년의 45%를 크게 상회했다. 신대륙의 수상 와인들은 호주, 칠레, 미국,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이렇게 5개국으로 구성되었는데, 호주가 올해 48개의 메달을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66종으로 최대 메달 우승국이었던 칠레는 42개의 메달로 순위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과 아르헨티나도 수상 결과가 소폭 하락했다.

스위트 부문에서는 헝가리 와인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예선과 결선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헝가리 와인이 다양성을 한껏 드러냈다고 보는 이유는 전통적인 명성이 있는 토카이(Tokaj) 뿐 아니라, 북서부의 파논할마(Pannonhalma)와 남쪽의 빌라니(Villány)에서 고르게 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체코 공화국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7개의 메달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체코 와인에 대한 인식을 자극할 수 있을만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체코 와인은 전통적으로 향기로운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팔라바(Pálava)와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도 수상 리스트에 올랐지만, 실버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은 피노 누아도 2종이나 수상 명단에 올랐다. 체코 와인의 경우, 올해 말 즈음해서 주한 체코 대사관의 주관으로 시음회를 준비 중이다.

Table 1) KWC2023의 국가별 메달 수상 결과

KWC2023 상위권 국가

이탈리아는 KWC2023에서 57개의 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이탈리아 와인의 강점과 다양성을 증명해 냈다고 볼 수 있다. 수상 와인들을 살펴보면, 바롤로를 중심으로 10개의 메달을 획득한 피에몬테(Piedmont)나 아마로네와 프로세코로 9개의 메달을 확보한 베네토(Veneto)가 선두권을 차지했다. 놀랍게도 이런 전통적인 강자들의 뒤를 이어가는 강력한 도전자들은 아브루쪼(Abruzzo)와 뿔리아(Puglia)였다. 이 지역에서 몬테풀치아노, 프리미티보, 네그로아마로 등 토착 품종의 잠재력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바롤로나 아마로네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지역임에도, 메달 수로는 단 한 두개 차이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한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와인 산업이란 무대 위에서 와인 생산자는 어디서나 도전할 수 있으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결국 훌륭한 와인은 특정 지역이나 품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다. 필자는 KWC2023의 결과가 독자들에게 이러한 와인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시야를 더 넓히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결국 훌륭한 와인은 특정 지역이나 품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탈리아에 이어 유럽에서 45개의 메달로 2위를 차지한 곳은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의 메달 수상은 지역적 표현을 골고루 보여주는 결과였다. 템프라니요가 지배적인 리오하(Rioja)의 레드 와인부터 다양한 품종의 라만차(La Mancha), 지중해의 영향을 받은 카탈루냐(Catalunya)와 발렌시아(Valencia) 지역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와인 강국의 명성을 보여주었다.

신대륙에서 선두인 호주는 총 48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놀라운 기량을 과시했다. 호주는 이탈리아보다도 더 많은 11개의 골드를 차지했다. 이는 호주 와인들이 금년 대회에서 평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풀바디의 견고한 쉬라즈로 유명한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는 총 12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금년 수상 결과를 전체 나라와 전체 지역으로 확대하더라도, 하나의 생산 지역에서 12개 이상의 메달을 획득한 경우는 13개의 메달을 차지한 프랑스의 샹파뉴(Champagne)가 유일하다. 리베리나(Riverina)에서는 다양한 화이트 품종으로, 빅토리아(Victoria)와 맥라렌 베일(Mclaren Vale)에서는 쉬라즈와 까베르네 소비뇽 위주의 와인으로 상을 받았다. 요컨대, 호주의 강점은 풍부한 와인 스타일과 그들의 떼루아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본다.

Table 2) KWC2023의 대륙별 수상 상황

KWC의 변화와 도전

코리아 와인 챌린지는 이제 한국의 와인 문화의 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플랫폼이 되었다. 특히 금년 대회에서 보여준 출품 와인들의 다양성은 세계의 와인 생산자들이 훌쩍 커진 한국의 와인 시장을 과거보다 더 주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좋은 성적을 거둔 수상 와인들은 한국의 와인 소비자들이 더욱 다양한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열쇠가 될 것이다. 과거의 소비자들이 와인을 의례 상징적인 브랜드나 유명한 산지와 연결 짓곤 했다면, 현재의 소비자들에겐 그 자체의 맛과 품질로서 와인을 즐기는 경향이 커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와인의 다양성에 흥미를 가진 만큼, 한국의 소비자들은 이제 와인을 더 깊이 있고 풍성하게 즐기고 있다. 이와 같이 KWC는 그 동안의 성장을 기반으로 미래에도 한국의 와인 문화를 이끌어갈 중요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KWC는 전문가 심사위원단에 의한 와인 품평 대회이지만, 사실 와인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도전이다. 왜냐하면 와인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주관적인 선호도에 쉽게 영향을 받게 마련인데, 평가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인들이 심사에 중요한 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KWC의 초점은 와인의 품질 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하는데 있다.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선호하는 와인의 특징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외국인이라면 같은 느낌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매년 심사 결과를 분석할 때마다 한식 문화에 따른 심사위원들의 맛에 대한 선호도라는 측면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회 대회가 마무리될 즈음, 다음 대회에서는 보다 선명한 품평 기준을 세워가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이러한 KWC의 도전은 한국의 와인 시장이 세계적으로 더욱 인정받는 시장이 되고, 한국의 소비자들이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와인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와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것이 KWC가 지향하는 가치이며, 앞으로도 이 가치를 통해 한국의 와인 문화가 더욱 성장하고 꽃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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